선택 _131024_draft 새똥철학

지멘이 아실과 북으로 향할 시기의 일이다. 발케네로 향하던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난관을 맞이하게 된다. 독립중대를 지휘하는 니어엘은 숙원을 추구하는 막고자 몇 가지 계책을 사용한다. 가장 먼저는 종족의 특성인 공수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이 계책이다. 하지만 니어엘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독립중대로 동원할 수 있는 소화차의 댓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독립중대로는 전역을 넓히지 못하고, 게릴라의 속성을 살릴 수 있는 지멘과 아실은 언제나 제국군을 비웃으며 - 혹은 박살내며 - 행보를 지속해 왔다. 일인부대라 할 수 있는 지멘의 무력을 일개 독립중대로 막기 위해서, 니어엘 헨로는 숙원을 추구하는 그들의 속성을 이용하였다. 갈림길에서 그녀는 단 하나의 길만 막았다. 지멘에게 선택지를 항상 남겨두고, 그를 몰아넣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첫째, 과감하게 지역의 소화차를 동원하는 실행력이었고, 둘째는 숙원을 - 꿈을 추구하는 그들이 '되돌아 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을 썼고, 나는 거기서 '선택'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후회를 - 단편적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우리가 뒤돌아 서지 못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꿈 앞에서 뒤돌아 서지 못하는 것인가? 물론 '시간'이라는 변수는 '역행' 불가능하지만, 그것을 배제해보면, 어떨까? 여기서 묻고자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보지도 않고 앞으로 걸어나갈 것인가 선택한 뒤에도 뒤돌아 설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가지,'후회'없는 삶이란 - 인생을 모두 긍정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로, 후회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

양 웬리는 버밀로온 성역 회전에서 정전 명령을 받아들인다. 본인의 신념을 굽힐 수 없기에 한 선택이다. 양심선언을 하는 사람들, 내부고발자들 역시 자신의 신념을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가끔 그런 상황을 생각해본다.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선택이 가져오는 후회는 필연적이라고 나는 믿는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무제한의 긍정에 있다고 하여도, 인생에 선택의 순간은 분명히 온다. 늘상 주장하는 것 처럼 '개새끼'와 '병신'의 선상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온다.

물론 이런 쓰잘데기 없는 '예측'을 제외하더라도 언제나 선택은 존재한다. 인생이 B와 D 사이의 C라던 사르트르, 그리고 그는 체 게바라를 21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 칭했다. 그리고 체 게바라는 불가능한 꿈을 꾸되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최근 민주/진보 진영에게 필요한 것이 마키아벨리적 판단이라고 한다. 물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전제는 마키아벨리즘에서 중요하지만, 그것 만으로 평하기에는 어려운 지점이 있지만 -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 내 입장에서는 적어도. 그것은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는 뒤돌아 볼 수 있기에, 앞으로 나갈 희망을 계속 가져야만 하기에 - 누군가는 병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UMC/UW는 자신의 노래에서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지만 그게 내가 아는 사람인 것은 싫은거니' 라고 말하였다. '병신'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은 많다. 스스로만 책임지면 된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우리는 한 두명에서 가족, 친구 혹은 자신이 이끄는 집단 등 책임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신념을, 꿈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전략적 승리를 위해 전술적 패배를 택하는 것이야 현명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양웬리와 같은 상황으로 나타난다면? 선택을 통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일까. 엘시 에더리는 죄가 없는 사람이다. 바르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꿈에서 자유롭다. 야리키, 쵸지 그리고 지멘은 숙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본인들의 종족적 한계를 뛰어 넘었다. 소설 속에 묘사된 가치를 가지고 현실 세계를 무작정 묘사하는 것은 바르지 않지만, 한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왜냐면 우리는 꿈꾸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항상 더 나아갈 수 있었다. 하늘을 돌파하여, 세상을 만들어 내는 시몬이나, 죽음으로 그것을 가르친 카미나나, 모순을 안고서라도 미래로 향하는 세츠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확신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인류의 지금을 긍정하고, 나아가라고 하는 것은 자칫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얼마나 유해한 존재인지 보여주는 사례를 많이 보고, 들어왔다. 

키 드레이번이 그랬듯, 이라세오날은 인류에게 600조가 서로가 서로를 먹잇감으로 여기는 미래를 말한다. 그리고 기계새는 "바꿔 말하면, 너희 사람들은 600조의 개체가 죽을 때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타자는 이 점을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부터 피를 마시는 새 까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한계를 두지 말고, 현재를 수용하고 다름을 긍정하라. 지금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우리는 되돌아 갈 길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이 가진 힘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본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즉, 꿈을 가진 자 뒤돌아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택은 필연적이고 후회는 긍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뒤돌아 보고, 돌아갈 수 있기에 우리는 나갈 수 있다. 물론 쓰잘데기 없는 현학적인 분석에 불과할 수 있지만 선택의 순간에서 잠시나마 힘들어해 본 결과는 -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호밀밭 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Airbag이 될 수 있다. 다스베이더가 시스로드에서 제다이로 귀환하는 그 순간을 그려보면서, 여전히 우리는 가능성의 존재라는 것을 확신한다. May the force be with you.


덧글

  • 데미 2013/10/25 11:03 # 답글

    아 인문사회밸리에서는 전혀 흡입력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글 첫머리 '지멘'이란 단어에 당해서 글을 클릭하고 말았습니다. 그 덕에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참, 글 다 읽고나서 마지막에 아이디보고 좀 웃었습니다….
  • 속물씨 2013/10/25 11:49 #

    감사합니다 ^_^ 초고로 쓰다 보니 글도 아직 정제가 안되서 부끄럽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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